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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 케르치대교 파괴! 러 생명선 봉쇄! 샬롬 ~ 오늘은 7월17일 태극기를 다는 날이지요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날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과학으로 풀어보려는 많은 노력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단체가 창조 과학회 이지요 성경을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으로 증명하려 하지만 재연이 불가능 하지요 성경에는 많은 숫자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창조주 이십니다. 창조는 설계를 통하여 창조가 됨니다. 수학은 과학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학과 과학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수학은 과학이 아니다. 수학은 공리를 기반으로 연역적으로 구성된 체계이기 때문이다. 연역논증(링크)과 귀납논증(링크)에 관한 글에서 연역논증은 '필연성'을 기반으로 한 논증이고 귀납논증은 '개연성'을 기반으로 한 논증이라고 설명했다. 연역논증은 주어진 참인 명제들로부터 자명한 결론을 드러내는 논증이고 귀납논증은 참인 명제들에서 '논리적인 비약'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이끌어내는 논증이다. 해가 어제도, 그저께도 동쪽에서 떴다 하여 내일 반드시 동쪽에서 뜬다는 논리적인 필연성은 없다. 다만 지난 십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해가 동쪽에서 떴다면, 내일도 그렇게 될 '개연성'이 높긴 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유추는 필연성이 아니라 개연성만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 수학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증명이 되었다면 해당 공리계에서는 절대로 예외가 없이 그 정리가 성립한다. 또한 우리가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하기 전까지 이 정리는 참이 아니었을까? 원래부터 참이었지만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하기 전까지도 이 정리는 항상 성립하고 있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을 뿐이다. 열역학 법칙 등의 과학 이론들도 또한 우리가 증명하기 전부터 참이었지 않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 과학 이론들은 우리가 참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참이 아니라는 근거를 찾을 수가 없어서' 참이라고 생각을 하고 활용하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수은 온도계 등으로 온도를 측정하고, 온도에 따른 기체의 부피를 측정하여 기체 팽창의 법칙(샤를의 법칙)을 밝혀냈다. 그런데 이 법칙이 생각보다 보편적인 것이 밝혀지자 이후에는 오히려 기체의 팽창을 활용한 기체 온도계로 온도를 측정(=온도를 정의)하기 시작했다. 순환논리이다. 게다가 이러한 선택이 반드시 옳다는 필연성 또한 어디에도 없다. 좋게 말하면 개연성, 나쁘게 말하면 '비약'을 바탕으로 지식을 확장시킨 것이다. 나중에 이러한 선택이 틀린 것으로 밝혀질 여지는 남아 있으며 어떤 과학자들은 오늘날도 상대성 이론이나 열역학 이론이 틀렸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반면에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참으로 증명된 공리계에서 그 정리가 거짓임을 밝히려 노력하는 수학자는 없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개연성이 아니라 필연성을 기반으로 증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학은 연역적인 체계, 과학은 귀납적인 체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과학에서도 수많은 수학적인 도구를 활용하는데,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학에서 수학을 활용할 때는, '수학에서 가정된 것들이 현실 세계에도 적용된다'는 숨어 있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많은 분포를 '정규분포를 따른다'라고 가정한 후 정규분포의 성질을 활용하여 해석한다. 너무 흔히 하는 일이지만, 분명히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과학에서 수학을 차용할 때는 알게 모르게 그 체계가 현실에 부합한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그것을 우리는 완벽하게 증명할 수는 없다. 다만 수학을 차용해왔을 때 현실 세계가 크게 모순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이려 노력할 수는 있다. 나중에 그 노력이 무색한 것으로 밝혀질 수도 없지만, 이것이 인류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 내용의 또 다른 시사점은, 수학을 무비판적으로 과학에 적용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특히나 통계 분야에서 통계를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접근에는 그 통계적 모델들이 현실 세계나 내 데이터에 성립한다는 가정이 깔려있음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에서 철학과 가장 가까운 측정학에서는 측정불확도(measurement uncertainty)라는 값을 산출할 때 "어떠한 불확도 평가 방법도 비판적 사고, 지적 정직함과 전문성을 대체할 수 없다. 불확도 평가는 기계적이거나 순수히 수학적인 작업이 아니며, 측정량과 측정의 본질에 대한 상세한 지식에 달려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링크). 하나님의 설계도를 알자!! 아브라함 100세 이삭은 60세 야곱은 130에 요셉을 만나서 70년살고 100+60+130+70=360 5x5x7=175 아브라함 6x6x5=180 이삭 7x7x3=147 야곱 BC_753년 4월 21일 로마개국 175+180+147+110=612 612×10=6120 (EndTime) 창세기 8장 4.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7×360=2520 신약이후 ( 중간기 포함 ) 17×360=6120 신구약합 3x360=1080 천년왕국 20x360=7200 창조세계의 끝 1+2+3+4+5+6+7+8+9×10+11+12+13+14+15+16+17=153 지구의공전주기 1항성년=365.25 365÷0.25=1460 BC_1461년 출애굽년도 480-430-490=1400 BC_1461-1400-90= AD_30년 십자가 부활 요한복음 21장 153x13=1989+30=2019 코비드19 그리스-페르시아 전쟁(또는 페르시아 전쟁으로 칭하기도 한다.)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연합과 페르시아 제국이 격돌한 전쟁을 말하며, 기원전 499년에 일어나 450년까지 이어졌다. 소규모 도시국가로 이루어진 그리스 세계와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이 충돌한 것은 기원전 550년경 키루스 대왕이 이오니아를 정복하면서 일어났다. 이오니아의 독립적인 도시국가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페르시아는 각 나라에 참주를 보내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 모두에게 문제거리가 되어버렸다. 기원전 499년 당시 밀레토스의 참주 아리스타고라스는 페르시아의 도움을 받아 낙소스 섬을 정복하고자 원정대를 보내었다. 그러나 원정대는 패주하였고, 아리스타고라스는 생각을 바꾸어 (별 어려움 없이) 페르시아에 대항하여 소아시아의 헬라스 지역 전체가 반란을 일으키도록 선동하였다. 그리하여 이오니아 반란이 일어나 기원전 493년까지 이어졌는데, 점점 소아시아의 더 많은 지역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아리스타고라스는 아테나이와 에레트리아의 군사적 지원을 확보하고 기원전 498년에 이들 군대의 도움으로 페르시아의 지역 도읍인 사르데이스를 점령하여 불태웠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은 이런 일을 한 아테나이와 에레트리아에 복수하기로 맹세하였다. 반란은 계속되어 기원전 497년~495년 사이에 양측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기원전 494년에 페르시아는 다시 군대를 일으켜 반란의 중심지인 밀레토스를 공격하였다. 라데 해전에서 이오니아는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여 반란군은 몰락하였고, 이듬해에 마지막 저항도 진압되었다. 다리우스는 자신의 제국 땅에서 다시는 반란이 일어나고 본토 그리스인이 개입하는 일을 막기 위하여 그리스를 달래고 사르데이스를 불태운 아테나이와 에레트리아를 주벌할 계획에 착수하였다. 기원전 492년에 페르시아는 처음으로 그리스를 침공하였는데, 페르시아 장군 마르도니오스는 트라케와 마케도니아를 복속하였으나 여러 불상사로 조기에 작전을 끝내야하였다.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의 두 번째 군대가 다티스와 아르타페르네스의 지휘 하에 그리스로 출정하였는데, 이번에는 에게해를 건넜다. 페르시아 원정군은 퀴클라데스 제도를 점령하고 에레트리아를 포위한 끝에 함락하여 파괴해버렸다. 그러나 페르시아군은 아테나이를 공격하는 길에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나이에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아서 페르시아의 노력은 당분간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자 다리우스는 그리스를 완전히 정복할 계획을 세웠으나, 기원전 486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리스 정복의 과업은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넘어갔다. 기원전 480년에 크세르크세스는 몸소 원정길에 나서 터무니없이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두 번째로 그리스를 침공하였다. 페르시아는 유명한 테르모퓔라이 전투에서 (스파르타와 아테나이가 주도한) 그리스 연합군을 무찔러 그리스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하였으나, 연합군 함대를 파괴하려다 페르시아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하였다. 이듬해 헬라스 연합군은 반격에 나서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퇴하고 그리스 침략을 막아내었다. 헬라스 사람들은 여세를 몰아 소스테스(기원전 479년)과 뷔잔티온(기원전 478년)의 페르시아 주둔군을 몰아내고 미칼레 전투에서 남은 페르시아 함대를 격침하였다. 뷔잔티온 공성전에서 파우사니아스 장군의 행동으로 여러 그리스 국가가 스파르타를 멀리하게 되었으며, 反페르시아 연합은 아테나이가 주도하는 델로스 동맹으로 재조직되었다. 델로스 동맹은 이후 30년간 페르시아에 대항한 전쟁을 계속하여 유럽에 남은 페르시아 주둔군을 몰아냈다. 기원전 466년 에우리메돈 전투에서 델로스 동맹은 두 번의 승리를 거두어 결국 이오니아 도시들의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일어난 반란(기원전 460년~454년)을 지원하려고 델로스 동맹이 개입하다가 크게 패하고 원정을 중단하였다. 기원전 451년에는 퀴프로스에 함대가 파견되었으나 별 소득을 얻지 못하고 철수하면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은 조용하게 끝나버렸다. 어떤 사료에서는 전쟁 상태가 종료된 것이 아테나이와 페르시아간의 소위 〈칼리아스 조약〉이라는 평화 협정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하기도 한다. 오늘날 이 전쟁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료의 대부분은 그리스 역사가들(특히 헤로도토스)과 일부 로마 역사가들의 사료이다. BC_499-7x360=2022년 다음 세계적 사건은 ? BC_492-7x360=2029년 ?? BC_490-7x360=2031년 ?? BC_480-7x360=2041년 ?? BC_461-7x360=206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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